자살 생각은 오래 했습니다.
다만 죽고 싶다는 감정적인 원인이 아닌 죽어야 한다는 이성적인 원인을 통해 자살하기로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은 제 안에서 죽으면 안 되는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로 논쟁했던 기간이기도 합니다.
혹시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판단력에 문제가 있을까 치료도 오래 받았습니다.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기도 했고 심리상담도 받았습니다.
위기 때마다 자살방지핫라인에 전화를 하여 하소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받기 위해 시에 제 신상을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최면까지 받아봤습니다만 이 모든 것들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자금사정만 나빠질 뿐이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치료와 상담을 해가며 들은
'살다보면 좋은 날 올거다'류의 막연한 희망은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밖에서는 오히려 삶은 고통이라는 말이 더 잘 받아들여집니다.
'네 마음은 네가 바꿔라'류의 처방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정신이 아프면 정신과에 가라는 말로 희망을 줘놓고서,
자살고위험자는 응급환자와 같다고 말하면서 가봤자 이딴 처방이나 한다는 것은
응급실에서 '알아서 하십시오' 하면서 진료비 뜯는거나 다를게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자살 도구와 계획을 갖추었다는게 알려지면 경찰에 신고해서 격리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까지 합니다.
정신적 문제로 입원해봐서 알지만 입원해봤자 병원에서 살면서 약먹는다 이상의 의미는 없으니
치료보다는 자살 못 하게 격리한다는 말이 맞겠죠.
이런 말을 하고는 있지만 관계자분들이 일을 대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연중무휴로 자살같은 어두운 이야기를 듣고 달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고
약만 처방해주는 것도 그게 표준적인 치료방법이니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발버둥치는 것은 무의미하다 생각해 이제 그만하려 합니다.
정신적인 문제로 인한 판단력 저하도 아니고 개선을 위한 노력도 충분히 했습니다.
제 가치에 대한 생각도 이 정도면 오래 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다 그만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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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남기신 글을 운영자가 합쳤습니다.)
글제목 : 쓰고나서 궁금해진 것이 있습니다
작성일 : 2018-04-23 01:40
수정을 못 해서 이렇게 더 쓰게 되었습니다.
상담이나 전화를 하다보면 정말로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은 경찰에 신고해서 강제로 입원시킨다던데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요?
가능하다면 이게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저 몸만 안 죽게 격리시키는게 능사는 아닐텐데 이런 협박을 들을 때마다 자살생각이 줄기는커녕
실패 안 하게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절대 누구에게 털어놓지 말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IP : 125.191.33.144
답신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자살에 대한 판단은 충분히 생각하든 오래 생각하든 모두 존중되어야 합니다.
비록 저희를 비롯한 모든 자살예방 활동가들이 자살의 실행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자살을 해야겠다는 판단을 모두 틀렸다고 여기거나 쉽게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바람직한 판단이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충분히 생각하게 되는 다양한 생각 중의 하나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생각을 존중한다고 해서 그 실행을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자살예방 활동가들은 자유롭게 자살하고픈 이야기를 나누기를 원하지만 자살을 실행할 구체적인 방법과 계획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습니다. 님도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강제 입원은 자해나 정신질환의 문제가 있을 때 정신과 병원에 강제 입원이 이루어지는 법적 절차에 준합니다. 여기에서는 그 자세한 내용을 적지 않습니다. 강제입원이 치료적이냐의 문제는 예전부터 늘 나온 주제입니다. 현재로선 충분히 좋은 방법은 아니나 그렇다고 다른 대안이 마땅히 뚜렷하지도 않기 때문에 여전히 남아 있는 방안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애매한 현실은 인생사에 많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제도나 법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이야기하고 서로 줄다리기하면서 보다 나은 방향을 모색해보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앞으로 대화는 안 하겠다고 공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이 또한 대화의 한 방식입니다. 대화가 문제 해결의 가장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방식입니다.
